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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은 헛되지 않습니다. [남덕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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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실 때 베푸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행한 일을 잊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한 여인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그가 만들어 준 옷을 보여 주며 울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다비다였습니다. 헬라어로는 도르가라고 불렸습니다. 성경은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사도행전 9:36


그런데 다비다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제자들은 가까운 곳에 있던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어 속히 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여 다락방에 들어가자 과부들이 곁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비다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습니다.


다비다를 기억하게 한 것은 화려한 직함이나 쌓아 놓은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던 옷이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어 준 시간과 수고였습니다.


그 옷들은 다비다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눈물은 그가 베푼 사랑이 얼마나 귀했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무릎을 꿇어 기도한 뒤 말했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다비다는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일이 욥바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다비다가 살아난 것은 선행으로 생명을 되살린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분명히 드러나는 아름다운 사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사랑으로 살아온 흔적은 다른 사람의 삶에 남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때 사람들은 우리를 무엇으로 기억하겠습니까?


얼마나 큰집에서 살았는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지보다 어려울 때 내밀어 주었던 손, 낙심했을 때 건네주었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더 오래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지친 사람을 쉬게 하고, 외로운 사람에게 온기를 전했다면 그 자체로 귀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것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디모데전서 6:7


젊음도 지나갑니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던 직함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이름 앞에 붙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자리도 내가 떠난 뒤에는 누군가가 대신합니다.


사진 속에는 젊은 내가 남아 있는데, 거울 속에는 세월을 건너온 내가 서 있습니다. 함께 웃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어느 날부터는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지나온 날이 더 많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말합니다.


“참으로 인생무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 자리에서 우리를 절망 속에 버려두지 않습니다.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영원한지를 분별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전도자는 고백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


전도자는 지혜를 구하고, 큰일을 이루고, 집을 짓고, 재물을 모으며, 즐거움도 누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 인생을 붙들 수는 없었습니다. 수고하여 쌓은 것도 다른 사람에게 남겨야 했고, 지혜로운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전도서의 ‘헛됨’에는 입김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인생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손으로 붙잡으려 하면 빠져나가고, 영원할 줄 알았던 것도 어느새 변해 버립니다.


그렇다고 전도서의 결론이 “아무렇게나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13


인생이 짧기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움켜쥘 수 없기에 오늘 주어진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에 오늘 사랑해야 합니다.


인생무상을 깨닫는 것은 삶을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로잡으라는 부르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창고를 크게 짓고 많은 곡식을 쌓아 놓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는 이제 여러 해 동안 편안히 먹고 마시며 즐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날 밤 그의 영혼을 찾으셨습니다.


그는 재산을 보관할 창고는 준비했지만, 하나님 앞에 설 준비는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극입니다.


반면 선한 사마리아인은 길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자기 시간을 내고, 기름과 포도주를 사용하고, 짐승에 태우고, 여관비까지 지불했습니다.


그에게는 손해처럼 보이는 지출이 있었지만, 그 지출로 한 사람이 돌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37


우리는 흔히 얼마나 모았는지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소유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섬겼는지도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선행에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19:17


사람들은 도움을 받고도 잊을 수 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십니다.


[히브리서6: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서 6장 10절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행위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잊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이름으로 건넨 냉수 한 그릇도 상을 잃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42).


우리가 보기에는 작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보십니다.


다만 이 약속을 “돈을 베풀면 더 많은 돈으로 돌아온다”는 투자 공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누가복음 14:14


하나님의 보상은 이 땅의 재물로만 계산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열매일 수 있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기쁨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열매를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갚으신다는 약속은 남아 있습니다.


또한 선행으로 구원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은혜의 구원을 받으며,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에 선한 일을 행합니다(에베소서 2:8–10).


선행은 구원의 값을 치르는 일이 아니라, 구원받은 감사가 삶으로 흘러나오는 일입니다.


세상에서도 베푼 사랑이 오랜 세월 뒤에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의 박해 속에서 수많은 유대인을 구하는 일에 자신의 재산과 힘을 사용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의 사업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훗날 그를 돕기 위해 나선 사람들 가운데는 그가 살려 낸 생존자들이 있었습니다. 


독일 연방문서보관소에 따르면, 생존자가 주도하여 마련한 기금은 1963년부터 그를 지원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선행에 반드시 똑같이 일어나는 결과는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 사랑을 기억하고 다시 누군가를 붙드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려울 때 받은 한 끼의 식사를 기억하여 배고픈 이웃에게 밥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학금 덕분에 공부한 사람이 다음 세대의 학비를 돕습니다. 낯선 땅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은 사람이 새로 온 이웃의 손을 잡습니다.


김치 한 상자를 나누는 일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식탁에 놓이는 음식이면서 동시에 “당신을 기억하는 이웃이 있습니다”라는 마음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건넨 작은 사랑이 어디까지 흘러갈지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눈물겹게 보여 주는 실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1939년, 니컬러스 윈턴은 동료들과 함께 나치의 위협 아래 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어린이 669명이 영국으로 피신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유대인 어린이였습니다. 그 일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수십 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1988년, 윈턴은 영국 BBC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 참석했습니다. 방송에서는 그의 구조 활동을 소개했고, 그가 구하는 데 힘을 보탰던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그 곁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한때 죽음의 위협 앞에 있던 어린이들이 세월을 건너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뜻밖의 재회 속에서 포옹과 눈물이 이어졌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 노인이 앉아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그가 오래전에 살리는 데 힘을 보탰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숫자도, 명단도, 지나간 기록도 아닙니다. 숨을 쉬고, 사랑하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보다 더 귀한 보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통장에 큰돈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의 앞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 장면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나는 남은 날 동안 누구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누군가가 내게 받은 사랑 때문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수백 명을 구하는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 줄 수는 있습니다. 외로운 이에게 먼저 전화할 수 있습니다. 힘겨운 가정에 먹을 것을 나누고, 낙심한 청년을 격려하며, 주님을 모르는 이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재산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사랑한 일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8


이 말씀의 근거는 우리의 선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기에, 주 안에서 드린 수고도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랑하십시오. 나중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감사할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감사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을 때 구하며, 도울 기회가 있을 때 손을 내미십시오.


언젠가 누군가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때 저를 외면하지 않으셔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때 보여 주신 사랑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 말들은 우리가 바라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빈손으로 떠나는 인생일지라도, 사랑까지 빈손이었던 인생으로 살지는 맙시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누군가에게 건네며 살아갑시다. 우리에게 남겨진 오늘이 한 사람에게는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안개처럼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이 땅에 영원히 머물 것처럼 욕심을 부리며 살아온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라질 것을 붙드느라 영원한 것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소유를 늘리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 곁에 있는 사람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전도자의 고백을 통하여 저희의 날을 계수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오늘 주신 은혜를 감사히 누리게 하옵소서.


보답을 계산하며 베풀지 않게 하시고, 먼저 받은 주님의 사랑 때문에 기쁘게 나누게 하옵소서. 사람은 잊어도 주님께서는 기억하심을 믿으며,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저희의 작은 친절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게 하시고, 나누는 음식이 사랑의 소식이 되게 하시며, 전하는 복음이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남은 생애에 사랑해야 할 사람을 보여 주옵소서. 손을 내밀어야 할 때 주저하지 않게 하시고, 오늘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에는 저희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저희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 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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