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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남덕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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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로마서 12:9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1


악한 일을 보고 분노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악을 미워하면서도 자신은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거짓을 미워하다가 자신도 거짓말을 하고, 폭력을 비판하다가 자신의 말이 폭력이 되며, 누군가의 교만을 꾸짖다가 자신도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나는 악을 미워하고 있는가? 아니면 악을 미워한다는 이유로 나 자신도 악을 닮아 가고 있는가?”


성경은 단순히 악을 피하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선에 속하라고 명령합니다. 


악을 멀리하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은 함께 가야 합니다. 남을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할 책임까지 다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선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선한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고, 생명을 돌보며, 진실과 정의를 세우는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일이 모두 선한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여도 자기 자랑이나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일이라면 그 동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 회개의 길을 열어 주며, 억울한 사람의 편에 서서 진실을 말하는 것도 선한 일입니다. 


맡은 일을 정직하게 감당하고, 약속을 지키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책임을 다하는 것 역시 선한 일입니다.


때로는 단호하게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선입니다. 


누군가가 약한 사람을 괴롭힐 때 그를 제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악을 묵인하여 더 큰 피해가 생기게 하는 것을 온유함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한 생각이란 무엇입니까?


선한 생각은 단순히 낙관적이거나 기분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에 비추어 자신과 이웃을 바라보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되갚아 줄까?”보다 “어떻게 하면 잘못을 바로잡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높아질까?”보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한 생각은 소문을 사실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남의 실패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사람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악을 분별하면서도 자신 역시 넘어질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바울은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받을 만한 것, 칭찬받을 만한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빌 4:8). 


마음에 무엇을 오래 품느냐에 따라 우리의 말과 행동도 달라집니다. 원한을 계속 되새기면 보복의 말이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으면 순종의 길을 찾게 됩니다.


그렇다면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선한 사람은 한 번도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선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에베소서 2:10


우리는 선한 일을 쌓아 구원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선행은 구원의 값이 아니라 구원받은 삶의 열매입니다.


선한 사람의 모습은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손해가 따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는지, 잘못했을 때 용서를 구할 줄 아는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악을 미워하라”는 말씀은 악한 사람까지 미워하라는 뜻입니까? 히틀러 같은 사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히틀러와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과 침략은 분명히 악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악을 단호하게 규탄해야 합니다. 


그 책임을 물어야 하며,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진실을 기억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악을 행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흐려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악행을 규탄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것과, 그 사람을 향한 증오와 잔혹함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다릅니다. 


악인을 심판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도 거짓과 폭력을 정당화한다면, 미워하던 악의 방식을 따라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44).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좋아하거나 신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범죄를 덮어 주거나 처벌을 면하게 해 주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가 악을 멈추고 회개하기를 바라며, 그를 대하는 자신의 행동도 하나님의 뜻 아래 두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2장은 개인적인 보복을 금하지만, 이어지는 13장은 공적 권세가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할 책임을 말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과 정의로운 책임을 묻는 일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또한 피해자에게 상처를 빨리 잊으라거나, 다시 가해자 곁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의 안전과 회복이 먼저입니다. 용서를 말하면서 진실과 책임을 지워 버린다면 사랑의 뜻을 잘못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흉년 가운데 가족을 먹이고 살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20


요셉은 형들의 행동을 선한 일이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다”고 악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남은 인생을 보복에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악을 인정하면서도 선을 선택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선택이 가능합니다.


나를 험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나도 그의 약점을 퍼뜨리는 대신, 필요한 사실을 차분히 밝히고 거짓 소문이 번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침묵하는 대신, 피해자의 말을 듣고 정당한 절차로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거친 말을 들었을 때 더 모진 말로 되돌려 주는 대신,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면서도 상대방의 인격을 짓밟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약해서 참는 태도가 아닙니다. 악이 정해 놓은 방식대로 반응하지 않는 믿음의 용기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반드시 이기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악 때문에 나까지 악해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남의 거짓 때문에 나의 정직을 버리지 않고, 남의 잔인함 때문에 나의 긍휼을 잃지 않으며, 남의 불의 때문에 나까지 불의를 선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선을 행하면 상대방이 반드시 즉시 달라진다는 약속도 아닙니다. 


우리가 선을 행해도 상대방은 악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계를 세우고 보호를 요청하며 책임을 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보복의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자가는 선으로 악을 이기신 주님의 길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죄를 담당하시면서도 악을 악으로 되갚지 않으셨고, 자신을 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벧전 2:23–24).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악을 향한 큰 목소리만이 아닙니다. 선을 향한 분명한 순종입니다. 


악한 세상을 한탄하면서도 정작 내 곁의 외로운 사람을 외면한다면, 우리의 분노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한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십시오. 외면했던 이웃에게 손을 내미십시오. 거짓 앞에서 진실을 말하고, 약한 사람 곁에 서십시오. 잘못한 일이 있다면 먼저 사과하십시오.


악을 미워하십시오. 그러나 악을 닮지는 마십시오. 선을 생각하고, 선을 사랑하며, 선을 행하십시오. 


세상의 악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이끌게 하십시오.

그것이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입니다.


기도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 악을 미워한다는 이유로 저희 마음에 증오와 교만을 키웠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악을 분별하는 지혜와 불의 앞에 서는 용기, 상처받은 사람을 품는 긍휼을 주옵소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악을 묵인하는 핑계로 삼지 않게 하시고, 정의를 말하면서 보복의 욕망을 숨기지도 않게 하옵소서. 피해자들이 보호받고 회복되게 하시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악을 멈추고 책임을 인정하며 회개하게 하옵소서.


저희 생각을 새롭게 하시고, 입술을 지켜 주시며, 손과 발이 선한 일을 위해 움직이게 하옵소서. 악한 일을 겪을 때에도 주님의 성품을 잃지 않고, 악에게 지지 말며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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